사도행전

 


12 장

 2절 ; 헤롯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임

 2절 ; 백성이 기뻐하자 베드로를 투옥함

 7절 ; 천사의 인도로 마가요한의 다락으로 돌아 옴

 19절; 군사들은 죽임을 당하고 헤롯은 가이사랴로 감

 22절;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하니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아 주의 사자가 쳐서 충이 먹어 죽음


* 양산에서 대하설교를 하고 있는 성경교회의 에스라 성경강좌


* 2절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 세입니다. 이 사람은 헤롯 대왕의 아들 아리스토 불루스의 아들로서 헤롯 안티바스의 조카가 되는 사람입니다.


*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는 12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순교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반면에 야고보의 형제 요한 사도는 끝까지 순교하지 않고 천수를 다하면서 노년에 요한 복음과 요한 1, 2, 3서와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 세베대의 아내가 야고보와 요한을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탁한 적이 있는데 참으로 비슷한 유비가 되었습니다


* 헤롯이 야고보 사도를 죽이니까 백성들이 기뻐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백성들이 좋아하니까 이번에는 수제자 베드로를 처형하려고 옥에 가두게 됩니다.


* 하지만 하나님의 사명이 끝나지 않은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옥에서 나오게 되며 감옥을 지킨 간수들은 죄수의 탈옥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 헤롯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서 연설을 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치켜 세워주니까 자신이 잘난줄 알고 교만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사자가 쳐서 충이 먹어 죽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마저 죽이고저 했던 이 악한 왕 헤롯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역사를 살펴봅니다. 하나님은 천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줄 만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 반면에 악인들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죽게 되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악인들이 이 땅에서 평안히 살다가 죽는 일도 있지만 죽음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보내신 독생자 예수님을 믿지 못했다면 영원한 세월을 불과 유황 속에서 고통 받아야 할 운명이기 때문에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은 일인 것입니다.


*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원숭이가 진화되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또 당신의 주인으로 받들지 않는 것이 그것 자체가 바로 지옥으로 가야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by kimch | 2009/11/26 15:54 | 사도행전 | 트랙백 | 덧글(0)

사도행전

11 장

19절; 스데반 때에 흩어진 사람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여 성과가 나타나자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고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 옴

26절; 일년간 바나바와 사울이 사역함으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들음

27절;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올라갔고 아가보라는 사람이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 하니 글라우디오 때에 이루어 짐


* 양산에서 대하설교를 하고 있는 성경교회의 에스라 성경강좌


* 수리아의 안디옥이 복음이 이방으로 퍼져나가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안디옥 교회의 수장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으니 지도자가 필요했고 바나바는 다소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바울을 불러오게 됩니다.


*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도 단번에 목회의 전선에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에서 3년 정도 시간을 보내었으며 또 다소에서도 얼마간 세월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 26절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나온 설명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헬라어로 크리스토스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한자로 표기하면 기독이 되는 것입니다.


*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만을 신봉하고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반면에 나 자신을 나의 주인으로 믿는 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요 죄악인 것입니다.


* 사탄은 끊임없이 사람을 부추기면서 네 인생은 네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와에게도 선악과를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자식이나 탐심과 같은 우상이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보다 더 극복하기가 어려운 우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by kimch | 2009/11/25 17:08 | 사도행전 | 트랙백 | 덧글(0)

사도행전

 



10 장

 2절 ;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를 베드로가 만남

 11절; 큰 보자기 안의 짐승을 먹으라는 환상을 세 번 봄


* 양산에서 대하설교를 하고 있는 성경교회의 에스라 성경강좌


* 가이사랴는 가이사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로마에 아부하기 위해 헤롯이 건설한 도시의 이름입니다. 이집트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아부하려고 알렉산드리아 즉 알렉산더의 땅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건축되었습니다.


* 로마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제자들도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혜택인양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천사의 지시를 받고서야 고낼료의 집으로 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니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는 이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 유대인들의 기본 사상은 이방인들은 지옥의 땔감용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으면서 동시에 만왕의 왕이요 만 백성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혈통의 유대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앙을 물려 받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 11절에 보자기 안에 짐승을 먹는 비유는 실제 부정한 짐승을 먹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부정한 짐승처럼 여김을 받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비유인 것입니다.


* 레위기 11장에는 부정한 짐승과 정한 짐승이 나오는데 오늘날 레위기 11장의 음식 규례를 교회에서조차 가르치지도 않고 또 그러한 교훈을 들은 사람들이라도 준행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 오늘날 수많은 난치병이나 불치병이 만연하는 이유가 바로 음식의 문제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환경오염도 문제가 되지만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먹거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이 등푸른 생선이 몸에 좋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비늘없고 지느러미가 없는 생선은 먹지 못할 것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해양이 전체로 오염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참치와 같은 대형 어종에 많은 수은이 침착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 음식 규례의 가장 큰 요점은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늘이 없는 생선들이 대부분이 지방이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중금속의 오염을 떠나서라도 동물성 기름을 많이 먹는 것은 성인병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일이 되겠지요.


* 음식 규례를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씀이 지극히 옳은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는 성도가 그러한 음식에 관한 작은 규례하나라도 지킬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레위기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 그 모든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서 내려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면 지키고 이해가 안되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금하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신앙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by kimch | 2009/11/24 16:25 | 사도행전 | 트랙백 | 덧글(0)

사도행전

 


9 장

 3절 ; 다메셋 도상에서 주님을 보고 3일을 보지 못함

 11절; 아나니아에게 직가의 유다 집에 있는 사울을 보게 함

 25절; 광주리를 타고 피신한 사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전도하니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으로 형제들이 다소로 보냄

 33절; 베드로가 룻다의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침

 40절; 욥바의 죽은 다비다(도르가)를 베드로가 살림

 43절; 베드로가 욥바의 피장 시몬의 집에 유함


* 양산에서 대하설교를 하고 있는 성경교회의 에스라 성경강좌


* 사울이 선한 사람으로 바뀌는 계기가 3절에 나옵니다. 그는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으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바리새파였으며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 그러므로 당시로서는 사울은 내세울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반면에 12제자들은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사람들에게 내놓을 만한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찬성한 사울이라는 청년을 주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으며 바로 이 사도 바울의 1,2,3차 전도 여행의 결과 복음이 터어키를 지나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또 영국으로 미국으로 오늘날 한국으로 복음이 전해져서 오늘 우리들이 주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 사울이라는 청년은 처음에는 교인들을 잡아 죽이는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출발한 이유도 복음을 받은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간 것이었습니다.


* 유대교에 대한 사람을 죽일 정도의 열심을 가진 사울을 주님은 바울로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려면 열심히 필요합니다. 정통 교단에 다니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한치의 열심도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 반면에 이단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의 열심도 가히 죽음을 불사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복음서에 5달란트, 2달란트, 한달란트 받은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 한달란트 받은 종이 땅에 묻어 놓았다가 가져왔을 때에 주님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바깥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 오늘날 모태 신앙이라고 하면서 한치의 열심도 없이 주일날 왔다 갔다하는 교인이 있다면 바로 한달란트 받아서 땅에 묻어 놓은 악하고 게으른 종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오늘 나 자신은 주님 보시기에 악하고 게으르지 않은지 돌아 보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by kimch | 2009/11/23 15:52 | 사도행전 | 트랙백 | 덧글(0)

사도행전

8 장

1절 ; 그날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짐

3절 ; 사울이 교회를 잔멸함

5절 ;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전도함

9절 ; 마술사 시몬도 빌립을 따라 다님

26절; 빌립에게 예루살렘과 가사 사이로 가서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가르침--읽는 것을 깨닫느뇨


* 양산에서 대하설교를 하고 있는 성경교회의 에스라 성경강좌


* 1절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진 사실이 나옵니다. 이렇게 핍박을 통해서라도 흩어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흩어져야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 오늘날은 흩어지기를 싫어합니다. 대형 교회에 모여서 분산되기를 싫어합니다. 모체 교회가 새끼 교회를 자꾸 많이 만들어 가는 것이 옳은 일인 것입니다.


* 유럽의 대형 교회들이 대형화 된 다음에 겪은 일이 바로 박물관화였습니다. 즉 대형화 된 다음에는 교회가 텅 비어 비리는 박물관 단계의 역사를 겪은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의 대형 교회들이 오늘날 술집이나 나이트 클럽으로 팔린 것을 해외 뉴스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26절에 빌립이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읽는 것을 깨닫는가하고 묻습니다. 내시의 답이 가르치는 자가 없으니 어찌 깨달으리요하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 성경을 열심히 읽는 성도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가 혼자 열심만으로 읽는다고 성경이 밝히 보여지고 깨달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쉬운 책이 아닙니다.


* 올바른 성경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재대로 배울 때에 성경 속 비빌이 밝히 보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올바로 가르쳐야 할 첫 번째 사명자가 바로 목사요, 교사들인 것입니다.


* 하지만 오늘날 목사가 교사를 가르치고 그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러한 일이 드문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 오늘날의 설교의 형태는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설교를 합니다. 이책, 저책을 조합해서 이 예화 저 예화를 들면서 신약과 구약을 오락가락하면서 온갖 외국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거기다가 목사의 신념과 이론을 더하여 설교를 만들어 내는 형태입니다. 이런바 제목 설교, 예화 설교라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 하지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설교는 사람의 이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부교재처럼 되어 있고 목사의 주장이 본교재처럼 되어 있는 설교를 하나님이 들으실 때에 잘하고 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 하나님은 해석없이 그냥 읽더라도 성경을 백성들에게 읽어주고 들려주시기를 바라지 않으시겠습니까? 남왕국의 요시야 왕은 서기관 사반이 그냥 들려 주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하여 옷을 찢었습니다.


* 주일은 블로그를 쉽니다.

by kimch | 2009/11/21 17:32 | 사도행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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